(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서술한 글임을 밝힙니다)
1. 저는 기독교를 싫어합니다. 제 주변에 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분들께는 죄송한 말입니다만, 저는 솔직히 기독교라는 종교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이유를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더불어 대한민국 기독교만의 고유한 향취인, 타 종교에 대해 무례하고 배타적인 그 성향 또한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이 생각은 오늘 오후, 평소 잘 아는 사이이기는 하나 별로 접촉은 없던 여후배가 메신저 접속으로 말을 걸면서 더더욱 확신이 되었습니다.
그 후배는 저에게 부탁이 있다고 했습니다. 메신저 피싱도 많이 판을 친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부탁이 있다는 그 아이의 말이 뜨자마자 전화부터 걸어서 그 아이 본인이 맞는지를 확인했습니다만, 다행히 메신저 피싱은 아니더군요. 하지만 거의 그것만큼이나 제가 싫어하는 일이었습니다. '선교'지요...
그 아이가 다니는 교회는 요즘 부쩍 신도가 줄어서 비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이라는 분이 20대 청소년반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젊은층에 대한 선교가 부족하다며, 다음주까지 각자 두명씩의 친구나 친지를 데려오라는 특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를 지키지 못한 신도는 믿음이 부족한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서를 덧붙이면서 말이지요.(사실 이 말은, 기독교에선 주홍글씨 찍는 것과 다름이 없지 않나요?)
그러니 저더러 계속 다니지 않아도 좋으니, 한번만 같이 가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에서 성실하지 못한 신도로 찍힐 판이라며....
2. 그래서 그 말도 별로 없는 아이가, 평소 친하지도 않은 저에게 메신저로 말을 걸어서, 중국땅의 사기꾼들이나 할 법한 비겁한 부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당혹스러움이었습니다. 차라리 돈을 빌려달라고 했으면 사정을 들어보고 저의 판단에 따라 결정을 내렸겠습니다만, 이 문제는 그저 "한번 도와주는 차원"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명확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교회의 악몽처럼 끈질긴 선교에 이미 한번 크게 데었던 적이 있습니다.
시와 때를 가리지 않는 전화공세, 시도 때도 없이 초인종을 눌러대는 끈질긴 방문, 핸드폰을 꺼놓자 어떻게 알았는지 집전화를 공략하던 그 정보력, 도무지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는 무시무시한 논리...(아프면 나와서 은혜받으면 낫는다. 시간없으면 잠깐만 들렸다가 가라. 다른 종교를 가졌으면 와서 회개하고 은혜 받으라 등등등..)
기타 등등 기독교는 저에게 조선일보 보라고 졸라대는 신문판매업자 그 이상의 기억으로 절대 남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하죠. 적어도 조선일보에서 나온 그 아저씨는 저한테 지옥에 갈거라는 저주는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 섬찟한 눈빛은 끝까지 억지로 웃던 그 기묘한 얼굴과 어우러져 굉장히 공포스러웠습니다.
저는 끝내 그 아이의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신을 믿지 않는 저의 평소의 지론과는 전혀 관계없이, 앞으로의 제 인생에 또 그와 같은 끔찍한 이벤트는 절대 사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나중에 밥 한번 사겠다고 했습니다.
3. 대학시절에, 학과 내에 레전드급 미모를 가진 후배가 있었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여후배와는 다른 인물입니다)늘씬한 체격에 아기같은 피부, 얼핏 한가인을 연상하게 하는 청순한 외모를 함께 갖춘 그 아이는 우리과는 물론이요 건물이 붙어있는 옆 학과에서까지 구경을 올 정도로 참으로 예뻤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흐믓할 정도군요. 오죽하면 별명이 "여신"이었으니까요.
성격도 깜찍하고 싱그러웠던 그 아이가, 마침 저와 같은 방향으로 하교를 한다는 사실은 저에게 엄청난 설레임을 주었습니다. "재미있고 유쾌한 선배랑 같이 집에 간다."라는 평판을 듣기 위해 저는 당시 출판되었던 "세련된 유머 구사하는 법"(TV에도 꽤 출연했던 심리학 교수가 쓴 책입니다.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남희석의 유머스타일을 분석하는 등 꽤 흥미로운 내용이었죠. 당시 남희석은 최고의 신랑감이었습니다) 과 "이런남자 쿨하다"라는, 정체불명의 뉴욕타임즈 기자가 쓴 책을 독파하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교버스에서 그 아이 옆자리에 앉아 제가 쏟아낸 조크와 유머와 개그를 합치면 책 한권은 족히 나올 겁니다. 하지만 발정이 나 있는것이 분명한 남자가 필사적으로 구사하는 조크가 얼마나 웃겼을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주제에 감히, 그 아이와의 그 아이와의 하교길을 거절하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으니, 바로 그 아이가 종교적인 문제로 다른 이들과 논리 싸움 비슷한 것(종교문제로 벌어지는 싸움은, 어느 곳보다 치열하지만 당사자들은 굳이 서로 웃으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양쪽 모두가 해괴한 표정을 지은 채 해괴한 분위기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는 특이점이 있습니다.)을 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었습니다.
그 이쁘장한 아이의 입에서 제 스스로 "가장 싫어하는 논리"라고 규정한, 논리를 가장한 억지의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아아아. 제가 지나치게 결벽을 떠는 성격도 아니고, 사람을 가리는 편도 아닙니다만 두번다시 그 모습을 보기 싫더군요.
볼때마다 매혹당하는 외모와 제가 가장 싫어하는 형태로 교육당한 흔적이 공존하는 사람을 바라보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더군요. 그 아이는 전혀 관심도 없었겠지만, 그렇게 그 아이는 저의 위시리스트에서 사라졌습니다.
(절대!! 그 아이가 무지막지한 혼전순결 주의자여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외모의 힘 만큼이나 "절대로 대화가 통할 것 같지 않다"라는 절망이 주는 힘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기독교와 저의 너무나 넓은 간격을 확인했습니다. 천하절세미녀라도 먼저 기독교 신자인지를 확인하는 버릇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와 아주 가까와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확인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저는 오늘, 여전히 전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질문을 몇 개 던져 봅니다.
아마 누군가 저에게 이 문제를 속시원하게 해결해 준다면 제가 가진 기독교에 대한 편견을 일정부분이라도 해소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 신도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왜 교회의 위기일까요.
2. 이런 식의 다단계 선교를 해서 끌어모은 신도들이 과연 얼마나 진실된 믿음을 가질까요.
3. 선교에 실패한 신도들은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게 된 것일까요. 목사가 신도의 믿음의 깊이를 잴 수 있을까요.
4. 본질적으로, 과연 기독교의 신이라는 양반은 이런 식의 선교를 원하고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