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없다's Blog
새벽 4시의 기적

또, 독후감 들.

비스듬하게 책 읽기 2006/10/31 00:40 by 거의없다

1. 눈먼 자들의 도시

수평선이 내다보이는 바닷가와 드넓은 평야에서 제 발로 쫓겨나
좁디좁은 도시에서 다닥다닥 붙어 살아가는 도시의 인간들에게 가한,
잔혹하기 짝이 없는 실험이랄까.
단 하나의 감각기관을 빼았겼을 뿐인데도
진정 너무나 심하게 망가지는 - 아니다, 망가진다는 말로는 좀 부족할 것 같다 - 도시 인간들을
작가는 따움표 한번 쓰지 않고 철저하게 '보여 '준다. (원작에서는 마침표 조차 쓰지 않았단다)
책을 읽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의사의 아내에 이어 두번째 목격자가 되어
그 끔찍한 꼬라지를 고스란히 목도하게 된다.

참, 책을 펼쳐들고 할 말은 아니다만.
목불인견.
이라고 외치면서도, 새벽까지 붙잡고 다 읽어내렸다.

글자들이 스멀스멀 머리속으로 기어들어가는 듯,
묘사된 장면들이 자꾸 상상이 되서
마치 몸 위로 벌레가 수십마리 지나가는 것처럼 찝찝해지고 텁텁해지고
뭐, 하여간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독서였다.
특히나, "몇날 몇일을 세탁하지 않은 옷들과 땀과 쌓여가는 배설물, 구석에 쌓아놓은 음식들이 한꺼번에 썩어가는 냄세" 를 머릿속에서 만들어 냈다가(어떻게 만들어냈냐고?...몰라. 그냥 되더라고)으윽. 토할 뻔 했다.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낯설게도(..) '글쓴이는 인간한테 희망을 갖고 있는 모양이야.'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게 오래 산 사람이 그런 결론을 내렸다니
역시 인간이라는 동물은 어찌됐건 옳은 방향으로 가게 돼 있나봐.
라고 따라서 결론을 내려버렸다.


2. 삼미 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1할 2푼 5리로 살아왔다는 주인공, 개떡같은 타율이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글 쓰며, 밥 먹고 하늘보고 야구 하며 지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역시 인생은 한 방이라는 진리까지 보너스로 얹어주는,(비꼬는 거 아니...다)

비슷한 때에 태어나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며 비슷한 목표를 강요당하고 비슷한 실패를 맛보았을,
그래서 누구나 가슴 속에 비스무리한, 정체모를 패배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그래서 '실은' 정말 잘 팔릴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그런 이야기.
(경쟁 사회에서 패배자 아닌 사람이 누가 있나? 죽을 똥을 싸며 일등하면 뭐해.이미 허리가 부러졌는걸.)
시종일관 유쾌한 이야기솜씨 덕분에 아주 유쾌하고 즐겁게, 너구리 면발 넘어가듯 술술 넘어갔다.
이거 쓰면서도 꽤나 킬킬거리지 않았을까.


버스에서 헤죽대는 웃음을 흘리게 만들었다가
마치 내가 작가인 듯, 내 이야기를 읽는 듯 하게 만들었다가
가슴이 아프게, 공허하게, 착찹하게, 답답하게 만들었다가
결국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하루쯤 일과를 제끼고 하늘을 쳐다보게 하는 그런.(이상한 곳에서 핑계를 찾고 있다)
그러나 다음날 눈을 뜨면, 나도 어쩔수 없는 "프로지망생"임을 깨달으며
결국은 나 역시도 허리 부러지는 삶을 포기할 만큼 프로하게 아마추어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만들어서
어떻게 보면 더더욱 씁쓸하게, 마치 어렸을 때 내가 욕해 마지않던 '어른의 짓거리'를 세월이 흘러 내가 하고있음을 깨달은 순간에 느껴지는 그런 회한을 느끼게 만드는.
뭐 그런 책이었다.

그러나.
"빌 게이츠가 말한 성공의 십계명"(그 중엔, 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샌님에게 잘 보여둬라,라는 말마저 있다.)을 책상에 붙여놓고 매일매일 낭독하는 후배 녀석에게는 꼭 권해주고 싶은 책.
굳이 따라하진 못해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하고.


3. 팝콘 심리학.

짱가님을 뵙고, 친필사인을 받아내어, 서민님의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과 나뭉 님의 "유럽 단기여행자를 위한 가이드북"에 이어서 저자 친필사인을 받은 도서목록에 세번째로 추가하려고 하고 있으나,
짱가님을 뵙기가 원체 쉽지 않아 사인받기 전에 헌 책이 되어버릴까 내심 걱정중인 책.

책 본문에도 나오지만, '고수'란 빡빡하게 채운 지식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아는 내공이 쌓인 사람이며
어렵게 쌓은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두말 할 필요없이 진짜 고수다.
고수의 책을 읽는 것은 그래서 즐겁다.
남이 어렵게 배운 것을 쉽게 날로 먹을 수 있으니까.
대학생 시절, 여자의 심리에 통달해 보겠다는 -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참으로 어이없는... 마치 살 빼려는 목적으로 경공술을 배우고 앉아있는 그런 한심한 - 이유로 본의 아니게 심리학을 세과목이나 수강신청하는 엄청난 짓을(그렇다. 시험볼때 느꼈다. 정말 엄청난 짓이었다) 저지른 나로서는
너무나 어렵게 미친듯 암기해야 했던 심리학 이론들이 이렇게 쉽게도 설명 가능하다고,
[심리학 원론] 저자의 멱살을 틀어쥐고 외치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 (물론, 이 주장이 앞뒤가 바뀌었다는 건... 나도 알아)

팝콘 심리학이라기보단, "건빵 심리학"이라고 하는 게 옳다. (물론, 나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는 전혀 없지만...)
가볍게 먹힐지는 몰라도, 속에 들어가면 엄청난 포만감을 안겨주는 책이니까 말이다.

제발. 건빵이 어떻게 가볍게 먹히냐? 식의 시비는 말자.

2006/10/31 00:40 2006/10/3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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