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없다's Blog
巨衣없다의 블로그 제멋대로 3시즌.

어젯밤 늦게 "사생결단"을 봤습니다. 선약이 있었습니다만 어찌어찌 되어 결렬되는 바람에 두어시간 정도가 붕 떠버렸는데 달리 할일도 없고 마침 집 앞 극장(제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앞 - 그러니까 신호등 하나 건너면 바로 메가라인 극장이 있습니다. 슬리퍼 찍찍 끌고나가기에 아주 적당한 거리라서 혼자 조용히 영화보고 싶을때 애용해주고 있습니다.) 시간표엔 9시 40분 마지막 영화로 사생결단이 걸려 있었습니다.

극장안에 앉아있는 사람이라고는 저를 제외하고 40대 쯤으로 보이는 불륜커플-왠지 분위기가 그래서.. 이거 절대 그사람들이 커플이라고 질투해서 이러는거 아닙니다.-_-;;-이 다였습니다.  앞쪽 의자 두개에다가 다리를 한쪽씩 올려놓고 옆 의자엔 콜라를 올려놓고 여유롭게 관람했습니다. 진짜 편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좀, 불편했습니다. 불편해서 재미가 없었다는 말도 아니요, 싫었다는 말도 아닙니다. 아주 불편하고 살벌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정말 알고싶지 않은 세상의 어떤 부분 - 그러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 병동 24시 같은.. 전 그런거 한번 보면 며칠동안 잠을 못잡니다 - 을 집중조명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이랄까요. 사실인건 알지만 믿고싶지 않은. 그런 것에 대해 아주 차가운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은 기분입니다.



주인공들 표정도 무지하게 불편합니다



어렸을 적에 저는 [영웅본색]시리즈에 미쳐서 자랐습니다. 저와 비슷한 시기에 성장하신 분들이라면 이미 익숙하겠지만 [영웅본색]은 순전히 완전히 갑빠에 의한, 갑빠를 위한, 갑빠들의 영화입니다.

남자가 걸어가야 할 길 - 남자는 대가리가 부서져도 의리와 믿음을 지키며 갑빠와 자세를 위해 목숨을 건다.(그것이 바로 영웅의 '본색') 가오상하는 짓을 하는 놈은 마지막에 가장 비참하게 죽는다 - 에 대한 일장썰을 윤발형님의 쌍권총과 장국영의 미모로 곱게 포장한 그 영화를 수십번 돌려보는 동안, 저의 어린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롤 모델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누구냐고요? ...누구긴요. 이 사람이죠.



"남자는!! 가오야 가오!!."



영화안의 세상은 결국 원칙에 맞게 돌아갑니다. 결국 배신자는 처단되고, 정의는 승리합니다. 목숨걸고 의리와 신의를 지킨 주인공은 죽어서도 영웅으로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죠. 어린 제가 생각하기에, 남자의 길이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라오면서 보고 들어온 것이, 어디 그렇습니까? 세상을 사는 것은(제가 얼마나 살았다고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마는) 동화도 아니고 영화와는 더더욱 삼천만광년쯤 떨어져 있지 않습니까.

어느 도박꾼이 이야기한것처럼, 도박판에서 내가 승리하려면 누군가는 져야 합니다.  역사란 승리한 자의 소설이요 정의란 승리한 자의 이름 아니겠습니까. 패자의 정의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살아오면서 수많은 싸움판을 겪었습니다. 얼마 되지않는 대학의 자리를 놓고 전국의 수많은 동갑내기들과 맞짱을 떠야했고,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또 얼마 되지않는 일자리를 놓고 불특정 다수의 경쟁자들과 또다시 대가리가 터져라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나 자신만의 전쟁터에서 매일매일 전투를 치르며 살아갑니다.

결국 계속되는 싸움에서 어떻게든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습니다. 과정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결과만이 모든것을 이야기하고 증명하지요. 얼마전[싸움의 기술]에서 백윤식 아저씨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싸움에 반칙이 어디있냐."

그렇습니다. 반칙이 어디있습니까? 씨발 무슨 더러운 수를 써서라고 이기고 봐야죠.

그게 아직도 친일파가 득세하고 살인자가 당당한 대한민국에서 26년을 살아온 저의 생각입니다.







[사생결단]은 그런 치사하고 더러운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또는 한칸이라도 위로 올라가 보겠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두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갑빠 같은건 아예 찾을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어설프게 갑빠 내밀었다간 직빵으로 심장에 칼맞기 딱 좋죠. 이미 그 바닥에서 굴러먹을 대로 굴러먹은 두 주인공들은 내가 살기 위해선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혈육을 포함해서 믿을 놈이라고는 한놈도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지요.

마약을 팔아먹고 온갖 부정한 짓들을 저지르면서도 지들이 하는 짓을 정당화할 생각도 별로 없어보입니다. 마치 "너도 그렇잖아?"라는 말투로 당연하다는 듯 나레이션을 통해 관객들에게 썰을 풀어대죠. 사실 맞습니다. 마진이 300%라는 류승범의 말을 들었을때 '그 장사 대박나겠는걸.'이라는 생각이 젤 먼저 들더군요.(헉, 저만 그런건가요..-_-;;)

그렇게 영악하고 비겁한 주인공들이지만 어디 세상이 호락호락할리가 있겠습니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먹이사슬 위에는 언제나 더 강한 놈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기 마련이죠.

상도(류승범)을 이용해 마약조직의 대가리를 잡아보려는 도경장(황정민)의 계획도, 도경장을 이용해 부산의 마약시장을 꿀꺽 먹어보겠다는 상도의 계획도 뜻대로 잘 되지 않고 자꾸만 꼬여들어갑니다.





영화를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 수 있습니다.

상도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며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는 '악어'나 도경장이 맞이하고 싶다는 '찬란한 아침'이라는 것의 실체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다는 것입니다. 개처럼 물어뜯고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막상 두 주인공의 이상향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어떤 말도 없다는 것이죠.

아마 두사람도 잘 몰랐던 것이 아닐까 - 하고 그냥 저 혼자 생각해 봤습니다. 그냥 이번일이 끝나면 뭔가 더 나은 삶이 시작되겠거니.. 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있긴 하지만 그게 뭔지는 잘 모르는, 뭐 그런거 아니었을까요. 아, 어쩌면 저의 모습과 이렇게도 닮아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뭐 다들 그러고 사는거 아니겠습니까. 언젠가 꽃밭에 누워 쉴 날을 기다리면서요. (제가 참 좋아라 하는, 강산에님의 노래가사 입니다.)





저는 저의 전쟁터로 돌아갑니다.  당신의 전쟁터는 어디입니까.

아마 저의 뒤에 있던 불륜커플은 모텔로 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크크크





덧붙여 - 추자현씨가 없었다면 이 영화의 리얼함은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가끔 "인제 몸으로 승부하냐?" "누드집 찍더니 미쳤군."등등의 리플이 보이는데 한숨이 나옵니다. 어찌그리 좁아터졌는지 한심할 뿐입니다.

'와일드 카드'에서도 인상적이었던 이도경씨 매우 훌륭하시고, 김희라 선생님은 두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조연분들 덕분에 영화 팍팍 살았습니다.



2006/05/22 10:36 2006/05/2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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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담패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드집 좀 찍으면 어때요 추자현 겁내 좋아요

    2006/05/25 03:03
  2. 없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전 누드집 찍어줘서 더 좋아요.우하하하

    2006/05/2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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