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스티븐 킹의 전집을 다 모으고야 말겠다는 의지에 불타고 있는 나는 - 책에 뽐뿌질을 받다니.. 나로선 흔치 않은 짓이다 - 종로에서 누구를 만날일이 생기면 습관적으로 반디엔 루디스를 약속장소로 잡고는 한다.
소설 C-113 코너에 주르륵 꽃혀있는 스티븐 킹 전집(황금가지 펴냄)을 보며 뽐뿌의지에 탄력을 받고 몇페이지씩 맛보기도 하면서 다음엔 뭘 살까 고민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기 때문이다.
시간약속 지키지 않기로 악명이 자자했던 내가(늦는 게 습관이 아니라 길 잃고 헤매는게 습관이다) 꼬박꼬박 먼저 나가서 기다리는 걸 보고 약속 당사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않으며 "니가 드디어 욕먹는 것에 싫증이 났구나."등등의 말을 하곤 하는데, 전혀 사실과 다르지만 굳이 "그게 아니라 먼저 나와서 딴짓하고 있었다."라고 정정하고 싶지는 않아서, 뭐 그냥 내비 뒀다.
전화번호부 본 김에 짜장면 시켜 먹는다고
"이제부터 나를 칼타임이라고 불러라." 등의 헛소리도 잊지 않고 붙여 주었고.
지금까지 내 손에 들어온 것들은 캐리, 샤이닝(상,하),단편 모음집 그리고 일주일쯤 전에 산 미저리. 도합 다섯 권. 그가 쓴 글들은 어마어마하게 많고 과연 그 중에 얼마나 발간될지는 모르지만, 부디 중간에 멈추지는 말아줬으면 한다. 내가 한권씩은 꼭꼭 살 테니까.
시커멓기만 하고 멋대가리 없는 책 디자인은 아무리 봐도 우리집에서 굴러만 다니다가 지난 번 이사 때 폐기 처분되는 운명을 맞은 "세계문학전집"(읽으려고 여러번 시도했지만 글씨가 횡이 아니라 종으로 내려가는 데다가 한문이 절반이다. 이걸 욕을 뱉거나 던지지 않고 누가 다 읽을 수 있을까)을 생각나게 해서 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깔끔하게 정리해서 나와 주는게 어디냐.
형이 약속한다. 꼭 다 사서 내 책장에 박아주마.
그저께도 반디엔 루디스에 갔었다. 물론 휙 들어가서 책을 구경할 생각이었지만 입구에서 다른 것이 내 눈과 귀를 끌었다. 바로 이 사람들.

지하철 역에서 바로 이어지는 서점 입구에 작은 무대에서 외국인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챙이 넓은 솜브레로 모자를 쓰고 판쵸를 두르고 마리아치를 연주하는 폼이 멕시코 인들이겠거니 싶었다.
급하게 차린 듯 스피커도 몇대 없었고 바닥에 깔아놓은 녹색 천(카펫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과 뒤에 걸려있는 현수막이 무대장치의 전부.
계단에 앉을 수 있게 나무를 깔아 만든 객석에는 삼사십 명 정도의 사람들이 앉아서 연주를 듣고 있었다.
쟁쟁쟁거리는 바이올린 소리가 귀를 잡아당겨서 나도 자리에 앉았다. 마리아치는 "데스페라도"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등의 영화에서 대충 흘린거 말고는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어서 들어보고 싶기도 했고.
연주는 아주 좋았다.
약간 어둑어둑해지는 그 시간대에 아주 잘 어울리는 연주였는데 바이올린 소리는 컨트리 음악처럼 흥겨웠으며 어쿠스틱 기타 역시 쉴새없이 창창거리고 나무를 깎아서 만든 플롯스럽고 피콜로틱하게 생긴 악기는 농악대의 피리를 생각나게 하는 높은음을 불어댔지만 전체적으로 어딘가 약간은 우울하고 우수에 젖은 것 같은..뭐 그런 느낌였다.
가사는 저연혀 알아들 수 없었지만(당연하지)뭔가 맺힌 목소리도 그렇고 호소하는 듯한 표정도 그렇고 미녀의 창가에서 꽃을 들고 부를 만한 노래는 아니었으리라.
홀리오 이글레시아스나 산타나, 뭐 이런 사람들의 음악이 이 줄기에서 흘러나온 거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말했듯이 나는 그쪽 음악엔 전혀 아는바가 없으니 그건 패스.
내가 들은 후로 두 곡을 더 연주했고 마지막 곡은 약간 느린 템포로 보컬이 아예 작정한 듯이 애절한 목소리를 냈다. 가창 능력 여부를 떠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훌륭한 연주였다. 열심히 박수를 쳤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는지 박수의 길이가 마지막 후렴구의 긴 호흡만큼이나 길게 이어졌다.
그들은 한국어로 "깜사함느다."라고 말했다.
서투른 한국어가 왠지, 약간 슬펐다.
연주가 끝나고 사람들이 주섬주섬 일어나고 나도 다시 가방을 맸는데공연 담당자로 보이는 사람이 그들에게 다가가 흰 봉투를 내미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또 "깜사함느다."라고 말했다.
어떤 곡을 연주하던 간에 연주하는 사람의 기분을 그대로 타고 나오는 법이라고, 어느 유명한 가수가 이야기한 생각이 나서,갑자기 궁금해 졌다.
그들은 어떤 기분으로 그 곡들을 연주했을까.
오늘 집으로 돌아가서 흰 봉투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남의 나라까지 와서 형편없는 무대에 서 노래를 하면서, 조금 소박하고 초라하긴 해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음을 축복이라 생각하고 감사할까,
아님 만족스럽지 못한 보수(돈을 많이 줄 리가 없으니까.)를 벌기 위해 어쩔수 없이 가진 재주 부리며 힘겹게 살아가는 것을 한탄할까.
약속시간이 되어가는 걸 잊어버리고 그들의 모습을 바라봤다.(어쩌면 그들은 돌아가는 길에 심각한 표정으로 그들을 야리고 있던 한 한국인에 대해 멕시코말로 욕을 할 지도 모르겠다.)
당신들의 어떤 기분이, 어떤 기분을 타고 나온 연주가 내 마음을 움직였던 걸까요.
누군가가 갑자기 외쳤다. 전 세계 공통어.
"앵콜!"
나도 엉겹결에 큰 소리로 말했다. 왜 그생각을 못했을까.
여기저기서 작고 큰 목소리가 들렸다. 마음을 움직임 당한건(틀린 어법이다) 나뿐 아니고 나와 그사람뿐이 아니었나보다.
약간 당황스럽던 보컬 아저씨가 다시 말했다.
"깜사함느다."
이미 수고비는 지불되었으니 한곡 더 연주한다고 그들이 돈을 더 받지는 않겠지. 하지만 보컬 아저씨는 멋진 미소를 지으며(팔자주름이 일품이었다.) 멤버들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기타를 들어올렸다.
다시, 연주가 시작됐다.
소설 C-113 코너에 주르륵 꽃혀있는 스티븐 킹 전집(황금가지 펴냄)을 보며 뽐뿌의지에 탄력을 받고 몇페이지씩 맛보기도 하면서 다음엔 뭘 살까 고민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기 때문이다.
시간약속 지키지 않기로 악명이 자자했던 내가(늦는 게 습관이 아니라 길 잃고 헤매는게 습관이다) 꼬박꼬박 먼저 나가서 기다리는 걸 보고 약속 당사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않으며 "니가 드디어 욕먹는 것에 싫증이 났구나."등등의 말을 하곤 하는데, 전혀 사실과 다르지만 굳이 "그게 아니라 먼저 나와서 딴짓하고 있었다."라고 정정하고 싶지는 않아서, 뭐 그냥 내비 뒀다.
전화번호부 본 김에 짜장면 시켜 먹는다고
"이제부터 나를 칼타임이라고 불러라." 등의 헛소리도 잊지 않고 붙여 주었고.
지금까지 내 손에 들어온 것들은 캐리, 샤이닝(상,하),단편 모음집 그리고 일주일쯤 전에 산 미저리. 도합 다섯 권. 그가 쓴 글들은 어마어마하게 많고 과연 그 중에 얼마나 발간될지는 모르지만, 부디 중간에 멈추지는 말아줬으면 한다. 내가 한권씩은 꼭꼭 살 테니까.
시커멓기만 하고 멋대가리 없는 책 디자인은 아무리 봐도 우리집에서 굴러만 다니다가 지난 번 이사 때 폐기 처분되는 운명을 맞은 "세계문학전집"(읽으려고 여러번 시도했지만 글씨가 횡이 아니라 종으로 내려가는 데다가 한문이 절반이다. 이걸 욕을 뱉거나 던지지 않고 누가 다 읽을 수 있을까)을 생각나게 해서 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깔끔하게 정리해서 나와 주는게 어디냐.
형이 약속한다. 꼭 다 사서 내 책장에 박아주마.
그저께도 반디엔 루디스에 갔었다. 물론 휙 들어가서 책을 구경할 생각이었지만 입구에서 다른 것이 내 눈과 귀를 끌었다. 바로 이 사람들.

핸폰 카메라로 찍어서 화질이 조악하다
지하철 역에서 바로 이어지는 서점 입구에 작은 무대에서 외국인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챙이 넓은 솜브레로 모자를 쓰고 판쵸를 두르고 마리아치를 연주하는 폼이 멕시코 인들이겠거니 싶었다.
급하게 차린 듯 스피커도 몇대 없었고 바닥에 깔아놓은 녹색 천(카펫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과 뒤에 걸려있는 현수막이 무대장치의 전부.
계단에 앉을 수 있게 나무를 깔아 만든 객석에는 삼사십 명 정도의 사람들이 앉아서 연주를 듣고 있었다.
쟁쟁쟁거리는 바이올린 소리가 귀를 잡아당겨서 나도 자리에 앉았다. 마리아치는 "데스페라도"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등의 영화에서 대충 흘린거 말고는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어서 들어보고 싶기도 했고.
연주는 아주 좋았다.
약간 어둑어둑해지는 그 시간대에 아주 잘 어울리는 연주였는데 바이올린 소리는 컨트리 음악처럼 흥겨웠으며 어쿠스틱 기타 역시 쉴새없이 창창거리고 나무를 깎아서 만든 플롯스럽고 피콜로틱하게 생긴 악기는 농악대의 피리를 생각나게 하는 높은음을 불어댔지만 전체적으로 어딘가 약간은 우울하고 우수에 젖은 것 같은..뭐 그런 느낌였다.
가사는 저연혀 알아들 수 없었지만(당연하지)뭔가 맺힌 목소리도 그렇고 호소하는 듯한 표정도 그렇고 미녀의 창가에서 꽃을 들고 부를 만한 노래는 아니었으리라.
홀리오 이글레시아스나 산타나, 뭐 이런 사람들의 음악이 이 줄기에서 흘러나온 거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말했듯이 나는 그쪽 음악엔 전혀 아는바가 없으니 그건 패스.
내가 들은 후로 두 곡을 더 연주했고 마지막 곡은 약간 느린 템포로 보컬이 아예 작정한 듯이 애절한 목소리를 냈다. 가창 능력 여부를 떠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훌륭한 연주였다. 열심히 박수를 쳤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는지 박수의 길이가 마지막 후렴구의 긴 호흡만큼이나 길게 이어졌다.
그들은 한국어로 "깜사함느다."라고 말했다.
서투른 한국어가 왠지, 약간 슬펐다.
연주가 끝나고 사람들이 주섬주섬 일어나고 나도 다시 가방을 맸는데공연 담당자로 보이는 사람이 그들에게 다가가 흰 봉투를 내미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또 "깜사함느다."라고 말했다.
어떤 곡을 연주하던 간에 연주하는 사람의 기분을 그대로 타고 나오는 법이라고, 어느 유명한 가수가 이야기한 생각이 나서,갑자기 궁금해 졌다.
그들은 어떤 기분으로 그 곡들을 연주했을까.
오늘 집으로 돌아가서 흰 봉투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남의 나라까지 와서 형편없는 무대에 서 노래를 하면서, 조금 소박하고 초라하긴 해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음을 축복이라 생각하고 감사할까,
아님 만족스럽지 못한 보수(돈을 많이 줄 리가 없으니까.)를 벌기 위해 어쩔수 없이 가진 재주 부리며 힘겹게 살아가는 것을 한탄할까.
약속시간이 되어가는 걸 잊어버리고 그들의 모습을 바라봤다.(어쩌면 그들은 돌아가는 길에 심각한 표정으로 그들을 야리고 있던 한 한국인에 대해 멕시코말로 욕을 할 지도 모르겠다.)
당신들의 어떤 기분이, 어떤 기분을 타고 나온 연주가 내 마음을 움직였던 걸까요.
누군가가 갑자기 외쳤다. 전 세계 공통어.
"앵콜!"
나도 엉겹결에 큰 소리로 말했다. 왜 그생각을 못했을까.
여기저기서 작고 큰 목소리가 들렸다. 마음을 움직임 당한건(틀린 어법이다) 나뿐 아니고 나와 그사람뿐이 아니었나보다.
약간 당황스럽던 보컬 아저씨가 다시 말했다.
"깜사함느다."
이미 수고비는 지불되었으니 한곡 더 연주한다고 그들이 돈을 더 받지는 않겠지. 하지만 보컬 아저씨는 멋진 미소를 지으며(팔자주름이 일품이었다.) 멤버들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기타를 들어올렸다.
다시, 연주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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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릿;;
2006/01/30 16:31솜브레로 모자구나...일반상식이 강하시군요. 전 비상식에 강해요
2006/01/31 00:17무대에 서 있는 순간 만큼은 보수가 중요하지 않은 게 진짜 프로겠죠. 그리고 작지만 관객과 호흡하는 게 진짜 프로겠죠. 아티스트는 프로가 될 수 없지만 뮤지션은 프로가 되어야죠. 얼마 전 지하철 역에서 비슷한 양반들 봤는데, 진짜 프로였슴돠. 프로페셔널 뮤지션. 아프고 쓰라리고 멋진 사람들이죠.
2006/01/31 15:08스티븐 킹 읽다가 "유혹하는 글쓰기"도 꼭 읽어보세요. 그의 소설이 재밌는 건 스티븐 킹이 스토리 꾼이 아니라 탁월한 얘기꾼(story teller)이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akgun 님//처음 뵙는 분인거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6/01/31 21:11앨 님//저도 지식검색에서 찾아보고 정확한 명칭을 알았다는 말은 하지 않은체 제가좀 아는게 많습니다 우홧핫핫핫핫 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시잖아요? 저도 비상식이 전공입니다.
비죠 님//예. 멋있었어요. 그 냥반들 모자라도 좀 벗어서 돌렸으면 관람료를 따로 낼 의사가 있었는데.. 무슨 일이든 프로는 프로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아쉽네요.
유혹하는 글쓰기.. 꼭 읽어보겠슴다. 킹에게 다시한번 심하게 반해서 관련된 글은 죄다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스티븐 킹은 원체 재미가 있으니까 세계문학전집 짝이 나지는 않을거에요.
2006/02/01 11:29스티븐 킹..
2006/02/02 18:47장미의 이름을 다 읽고 나면 나도 접근 해보고 싶구려.
그런데 1년이 지나도록 아직 상권 반을 읽고 있으니...
이윤기옹 책 읽기가 힘드는건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녀석인지, 영화는 재밌더구만.
라이 님//한번 잡은 책 잘 안놓는 편인데(잘 잡지를 않아서 그렇지... 헉;
공포의 세계문학전집만은.. 오우 노. 한자 알러지가 있는 저에게는 완죤 고문이었어요-_-;;
2006/02/02 20:30읽으면 읽을수록 킹은 살짝 미친 천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쩜 이렇게 살떨리게 재미있는지..
갸하 님//새해를 맞아 축약형 이름을 사용하기로 하신 것이오? 매우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쏘. 그동안 쫌 힘들었소이다.
장미의 이름은... 사실 끝까지 읽기 매우 어렵소. 혹자는 뭐 '가장 대중적이고 지성적이다.'라고 지껄이기도 했지만 더럽게 지성적인 걸 충분히 공감하되 '가장' 대중적이라는 건 내가 아직 머리에 든게 부족해서인지 절대 공감이 안 가더이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가면 갈수록 흥미진진해지니 절대 놓지 말고 읽어보시길 바라오. 어디가서 아는척 하기도 매우 좋쏘...크하하하
추후에 킹을 읽을 의사가 생기시면 통보해주시오. 내 깨끗하게 읽고 빌려 드리리다.
간만에 볼드체나, 색 글씨가 없어서, 업데이트 하기 매우 좋았소 --)b
2006/02/16 02:02허허허.. 이거 그동안 본의아니게 수고스럽게 해드렸네요.^^
2006/02/16 2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