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없다's Blog
새벽 4시의 기적

OCN 과 Home CGV 에게 '틀기 만만한 영화'로 각인되서 그 반복횟수가 카운트를 포기할 정도로 무한의 궤도에 진입한 영화 [와호장룡]
하지만 틀기에는 만만할지 몰라도 보기에는 절대 만만하지 않다. 헬스장이든 친구집이든 모텔(!)이건 케이블 TV에서 이 영화를 만나면 무조건 끝까지 보...게 되는건 아니지만(장소적 의무에 충실해야 하므로...;;)그 유혹을 떨쳐내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끝을 다 알고 보는 까닭에, 훨씬 더 안정적인 마인드로 미처 못봤던 부분들을 찾아내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라면-그러니까 나 같은-더욱 그렇다.
"본 영화네."하고 꺼버리기엔 이 영화 너무 아름답고 재미있고 멋지다.

꽤 잘 만든 영화라고 해도 한 두세네대여섯일곱번쯤(-_-..) 보게 되면 슬슬 눈에 거슬리는 대사라든지, 뭔가 어설픔이 엿보이는 장면이라든지 뭐 그런 것들이 하나 둘씩 눈에 띄기 마련이고, 그런 부분에서 채널이 돌아가 버리기 마련인데 이 영화에선 채널 돌릴 타이밍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꼼꼼한 이안 대인은 돋보기 안경을 쓰고 새치를 골라내듯 눈에 거슬릴만한 부분을 남겨놓지 않았다.
[와호장룡]엔 볶음밥짜장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름기처럼 거북스러운 짱개무협영화의 오바가 없다. 화려한 무늬가 결코 검의 모양을 넘지 않는 청명검의 모양새처럼 날렵하고 깔끔하게 딱 떨어진다.

오바없는 무협영화, 얼마나 좋단 말이냐.



그래서, 오랜만에 또 봤는데 이번에도 왠 여자가 내 가슴을 발기발기 찢어 버렸다. 이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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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수련 낭자..




뭐든지 안 그러던 사람이 하면 그 파괴력은 따따블이 된다.
한없이 강하고 냉정하며 거칠어 보이는 사람. 도대체 바늘이 아니라 송곳으로 찍어도 피 한방을 안나올것 같은 사람이 사랑때문에 울고 웃고 설레발치고 가슴설레면 더 귀엽고 재미있고 가슴아픈 법. (이런 종류의 캐릭터에 대해 수많은 TV판 싸구려 멜로들은 정형화된 정답을 내놓고 있다.'싸가지없고 쌈잘하고 잘생기고 돈많은 재벌가 외아들.')

자경 누님이 누군가. 그 아우라가 얼마인가 도대체(형용사임).
폴리스 스토리에서 성룡대인 못지않게 날아다니던 자경 누님. 007에까지 진출, 가슴을 반쯤 내놓거나 물에 흠뻑 젖은 티셔츠를 입고 비명만 질러대던 기존 007걸들을 비웃으며 솔선수범하야 적들의 아구창에 날아뒤돌려이단옆차기를 꽂아버리던 자경 누님.
송곳이 아니라 총으로 빵 쏴도 샥-하고 피할거 같은 자경 누님이('실버호크'인가에서는 진짜로 총알도 피하지 않나? 보다 말아서 모르겠다) 연기한 수련 낭자는 그런 까닭으로 거의없다가 지 마음대로 선정한 최고의 멜로여주인공 자리를 차지한다.




수련낭자의 바램은 매우 소박한 것이었을 게다. 사랑하는 남자(리무바이)가 오랫동안 그를 괴롭히던 은원관계를 정리하고 얽히고 엃힌 의리에서도 좀 벗어나 마음의 평온을 찾는 것. 그리고 비정한 강호를 떠나 조용히 함께 늙어가는 것.
그녀가 사랑한 것은 당대 최고수가 휘두르는 번개같은 칼날이 아니라 손을 잡고 얼굴에 부벼줄 따뜻한 체온이었으리라.

바램이 슬슬 이루어질것 같은데 자꾸 태클이 들어온다. 이 철없는 남자, 깔끔하게 뜻을 못 정하고 미적미적 대다가 드디어 검을 버리는가 싶었는데 누가 자꾸 훔쳐가니까 또 마음이 동해 산을 내려온다.
지가 버려놓고 다시 찾아야겠댄다. 가만 있으면 알아서 찾을 텐데 굳이 나서서 돌아다니다 우연히 철천지 웬수를 보고 이번엔 또 복수심에 눈이 돌아간다.
근대 이 남자가 또 누군가. 왕년에 졸라 먹어주던, 그 인기가 바다를 넘어 다른나라 처녀들까지 그가 씹던 성냥개비 한번만 물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아우성을 치게 만들었던 개꽃미남 아닌가.
세윌이 주름은 만들지언정 원판을 갈지는 않는 법. 얘 혼자 내보내기 아무래도 불안하다. 따라 나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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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에 먹어주던 바로 그 표정


근데 또 엄한데서 엄한 년이 튀어 나와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어 간다.
철없이 검을 훔친것까지는 봐주고 달래서 인간좀 만들어 볼라는데 이게 자꾸 반항을 한다. 근데 얘가 쌈질도 좀 하고 면상도 졸라 반반해서 남자좀 후리게 생겼다. 영 불안하다.
그냥 좀 후두러 패 집으로 쫓아버렸으면 좋겠는데 철없는 남친이 이번엔 얘를 또 제자로 맞이해야겠단다. 아 씨박 진짜 얼굴에 피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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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집으로 들어가, 응?"
"싫은데요."
"아우 요년을 확..."


그 뿐이랴, 제자를 만들겠다고 쫓아다니다가 자꾸 둘이 만나서 무슨 짓을 하는지 눈빛들이 이상하다. 경치 좋은 곳에서 날아다니질 않나, 싸우다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얼굴을 애무하질 않나.. 둘이 날아가는 꼬라지가 아무래도 수상해서 따라가 봤더니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년이 남친을 유혹하겠다고 멀쩡한 옷에 물을 묻히고 지랄을 하고있다. 점입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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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걸린 윤발대인의 뻘쭘한 표정


마지막 싸움이 벌어지고, 인제 원수도 갚고 검도 찾았는가 싶었는데 칠칠맞은 남친이 독침에 맞아버렸다. 해독약을 가지러 간 불륜녀(...)는 감감 무소식인 가운데 당대 최고수라는 이 남자, 허무하게 죽어 버린다.
수십년을 기다려서야 마음의 작은 한 조각만을 보여준 이 남자가, 지켜 주겠다고 맹세한 이 남자가. 애타게 기다리던 일들을 지금부터 함께 하려는데 눈앞에서 죽어 버린다.

어이없고 기가 막혀서 말도 안나오지만 강인한 그녀는 마지막 길을 가는 남자를 붙잡고 오열하는 짓 따위로 이별을 망치지 않는다. 눈물도 흘리지 않고 조용히 남자의 곁을 지켜낸다.
마지막 숨을 아껴서 영원으로 가세요. 절 위해 쓰지 말구요.
볼때마다 안구에 습기를 차게 만들고야 마는 이 절절한 대사. 이별장면 사상 최고의 대사.



그녀는 그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고 내가 달려가서 쳐 버리고 싶은 장쯔이의 목 바로 앞에서 검을 멈춘다.
멈춤으로서 그녀는 아픔도 미움도 끊어버리고 결국은 사랑하는 남자를 죽게 만든 그 지긋지긋한 세속의 은원관계도 끊어버린다. 끝이 없을 복수의 고리도 끊어버린다.

아름다운 그녀는 액션배우의 아우라까지 한칼에 잘라 버린다.
2006/03/02 16:58 2006/03/0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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