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없다's Blog
새벽 4시의 기적

[괴물]을 관람함에 있어 뭐니뭐니해도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역시, 1000억 정도는 기본으로 먹고 들어가는 여타 몬스터들과 달리 매우 저렴한(..)몸값으로 생산된 국산 괴물씨가 과연 얼마나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움직임으로 뛰놀아 줄까 하는 점이었더란다.
갖다 붙인 티가 조금만 나버려도 괴물의 존재로 야기되는 공포, 혼란 등등이 한순간에 옆구리 터진 풍선마냥 피시식 김 새며 29번 은하계로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용개뤼]에서 목격한 바. 그만큼 괴수영화에서 괴수의 존재는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리얼리티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과연 우리의 괴물은, 돈지랄의 교과서적인 작태를 보여주던 영화의 퀄리티와는 별개로 어쨌든 뛰노는 모습 하나는 존나 볼만했던 [고질라]나 영장목 성성이과 최초로 간지나는 액숑과 절절한 멜로까지 소화해내던 [킹콩]에 견줄만한 뽀스를 뿜어 줄 것인가?

정말 다행스럽게도, 햇빛 짱짱한 날 평화롭던 한강 둔치에 버럭 나타난 괴물의 번들번들 미끌미끌한 피부, 개구리 뒷다리같은 근육의 움직임, 묵직함 중량감을 자랑질하며 화면에 '찰싹' 달라붙어 요리 쿵 조리 퍽 부딫히고 뽀사면서 제대로 한판 날뛰어 주니... "이건 저렴한 보급형 CG라구!!"라는 식으로 인내심 발휘할 필요 없다.  정신없이 보고 즐기기에 딱, 1%의 모자람밖에는 없다(아주 없다면, 그건 거짓말일테고..)
씨바 드뎌 우리영화에서도 저런 녀석을 보는구나 싶어 아주 감격스러워져 버렸더란다.

그뿐인가. 괴물의 디자인은 그 어느 영화에 등장했던 몽스터들의 사돈의 팔촌에 옆집 아줌마까지 다 통틀어봐도 한번도 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마빡이니.. 이거야말로 기술과 돈질에서 절대적 열세인 우리 영화가 끊임없이 재생산과 자기복제에만 열을 올리는 헐리우드산 몬스터들을 한 콧구멍 앞서는 모습이 아닐 수 엄따. 어찌 감동하지 않을쏘냐. 아아 씨바 박수한번 치고 넘어가자.


그러나 아무리 괴물 마빡이 훌륭하다 한들, 영화[괴물]의 주인공은 5가닥으로 입이 벌어지는 괴생물체가 아니다.
그렇다고 괴물을 때려잡는 근육질의 군바리 영웅도 아니요, 존나게 똑똑해서 거의 간달프급의 지혜를 보여주는 과학자님(대게, "이건 시작일 뿐입니다."식의 대사를 날린다.)도 아니요, 당수로 사람을 쳐서 기절시키고 전투기를 손수 조종하는 대통령도 당근 아니다.
지금도 한강변에 가면 오징어를 구워 팔고있을 것 같은,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소시민 가족.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만든 괴물보다 우리덜 머릿속에 훨씬 더 질기게 달라 붙는 건 바로 강두네 가족들이다.



당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정 중요한 결정을 내리느라 노심초사하시는 윗대가리 분덜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철저하게 강두네 가족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그런데 이 가족의 구성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주책바가지 영감탱이, 나사란 나사는 죄다 풀어 해쳐진것같은 정신상태를 자랑하는 민간인 고문관, 술에 쩔어사는 백수건달, 정작 땡겨야 할때 땡기지 못하는 양궁 동메달 리스트 등등 '평범'이라고 불렀다간 왠지 평범에게 미안해지는 인물덜이다.
강두네 가족 앞에 선 괴물은 그렇기 때문에, 덩치는 째바리가 안될지 몰라도 고질라보다 약 596475949배 더 후달달림을 선사한다. 사실 미국이라는 국가 전체의 전력을 상대로 혼자 고군분투하는 고질라는 위협적이기는 커녕, 되려 안쓰러워 보이지 않았던가.
감독 봉준호는 기존 괴수영화의 관념과 공식들을 교묘하게 피해가면서 한국과 한강이라는 현실에 딱 맞는 사이즈의 괴물을 관객들의 머릿속에서 한껏 부풀리는 데 성공한다. 요로코롬 솜씨 좋은 연출 덕에, 괴물은 스크린에서 그 쪼마난 위용을 자랑하며 맘껏 뛰놀 수가 있었던 거시다.

그 뿐 아니다. 미니멈한 괴물의 사이즈 덕에 감독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담아낼 공간을 얻는다.
괴물의 출현은 분명 커다란 사건이지만 인류/또는 나라 전체의 존재를 위협할만큼 커다란 사건은 아니다. [인뒤펜던스 뒈이] 급의 재앙이었다면 전국민 일치단결 방어태세에라도 돌입했겠지만, 괴물은 출현은 그렇지 않다.
한강변을 제외한 세상은 돌아가던 대로 돌아가고, 편협한 언론과 권력층은 또다시 지들 살아날 구멍을 찾는데 여념이 없으며 공무원은 그 틈에도 받을 뇌물은 다 받아 처먹고, 가장 가까이서 피해를 당한 당사자들에겐 아무런 대책도 없다.
결국 힘없고 빽없고 똑똑하지도 못한 강두네 가족은 아무런 도움도 관심도 받지 못한채 자기들의 힘으로, 자기들의 방식으로 투쟁을 준비한다.  싸워서 이겨봤자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그들이.



봉 감독은 블록버스터의 탈을 쓰고, 대규모 자본의 힘으로 만든 '작은' 괴물로 우리의 현실과 삶을 이야기한다.
안전한 곳에서 짱박혀 명령을 내리는 쪽이 아닌, 맨 선두에서 두려움에 몸을 떨며 싸우는 사람들, 괴물같은 고난과 냉정한 현실 사이에서 그저 몸뚱이로 싸워야 했던 우리덜의 시선으로 말이다.


결론. 시종일간 괴물이 건물 부수고 차들 사이를 질주하며 지랄발광을 떨고, 배두나는 레골라스모냥 1초에 화살을 5발씩 갈겨댈거란 기대를 품은 사람만 아니라면, 어서 괴물보러 가시라.
애국심이고 지랄이고 간에 일케 재밌는 영화 안보는 건 개인적으로도 손해다. 빠딱 일어나라.
2006/08/01 01:24 2006/08/0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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