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없다's Blog
새벽 4시의 기적

첫사랑. 인연.

인생의 절반은 노가리다 2006/01/11 11:43 by 거의없다
엊그제인가. 운전기사 겸 짐꾼 겸 카트 운반자 겸 말동무 겸 장난감의 자격으로 어머니를 따라 마트에 갔다. 이마트갈까 저마트갈까 하다가 결국은 이마트.. (헉. 인제 내가써놓고도 가소롭다 말장난.. 특정 장소 또는 상표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_-;;)
평일저녁인데도 사람들이 드글드글했고 어른들보다 수적으로야 밀리지만 자신들의 존재감 분출에는 기능적으로 훨씬 월등한 아이들도 여기저기서 괴성을 지르며 뛰고 달리고 힐리스 밀고(언제적 힐리스냐.. 짜샤) 심지어는 인라인까지 타고 달리고 자빠지고 해 댔다.

법전만큼 두꺼운 양에 그 절반이 광고였던 여성지에서, 어떤 부자양반이 쓴 ‘부자되는 방법 열가지’인가를 본적이 있는데 그 아자씨가 말하길.

부자가 되려면 돈을 많이 벌기보단 조금 쓰는게 중요하고, 물건 한가지를 사려고 해도 필연적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고 커다란 카트를 밀게 되며(웬지 채우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게 하려는 음모란다.) 본의 아니게 이것저것 구경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꼭 별 필요없는 것에도 구매충동을 느끼게 되는 마트에서 쇼핑을 하는 것은 장사꾼들에게 부득불 돈을 갖다 바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했던 걸 읽었던 생각이 났다.
그 아자씨 이걸 봤으면
“이러니까 니들이 부자가 못되는거야.. 쯧쯧.”
하시겠구만.

말인즉슨 틀린 말은 아니다만 글쎄. 왜 이렇게 거부감 느껴지는 거야.
이봐, 그런 거 말고. 어디서 얼마 해먹고 어디서 얼마 챙기고 그런게 부자되는 법 아냐? 어디서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더니 수능 만점 받았어요 하는 강남 8학군 고등학생같은 구라를 치고 있어.
그리고 역기능만 있는거 아냐. 순기능도 있다구.
나 며칠전 노숙자일때 여기 시식코너에서 밥 한끼 때웠거덩. 그것도 고기로만. 얼마나 맛있었는지 알아? 엄지손가락만한 종이컵이긴 했지만 마무리로 녹차랑 커피까지 마셨다구.


뭐 암튼 글타치고, 어머니의 구매물품과는 전혀 관계없는 시식코너에서 어슬렁대며 스커드 미사일급 눈치를 발사하는 행사직원 아주머니를 쌩까며 이쑤시게 하나에다가 햄을 다섯토막 찍어 먹고 있던(그래봐야 한쪼가리도 안되겠더라만) 거의없다, 순간 3시방향 약 5미터 전방에서 다가오는 누군가를 보고 요상한 기시감을 느꼈더란다.


분명히 본 얼굴인데. 누구지.


어디서 스친 얼굴이 아니라 꽤 알고지낸 듯한 이목구비인데. 누굴까. 누구지? 누구냐 너.


헉.


미혜 누나?(가명)


회상씬 들어간다. 촤촤촤촤촤...
중학교 시절 방송반 아나운서를 하며 느끼찬란한 목소리로 점심방송을 듣고있던 여학우들의 애간장을 사정없이 긁어내려(녹여내린게 아님) 결국은 멀미와 쏠림과 토악질까지 유도하고 말았던 거의없다는 맨날 혼나고 갈굼만 당하는 곳이었지만(가끔 맞기도 했었지) 매일매일 방송실에 가는 게 너무너무 즐겁고 신났었더랜다.
왜?

왜긴 왜야. 그녀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미혜누나.


지금도 내 이상형의 와꾸를 이루고 있는 그뇨의 자태를 기억해보자면,

그 머릿결이 예술이었다. 우리 방송실의 아나운서 자리는 바로 창가 앞쪽에 있었는데, 점심방송중에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그뇨의 머릿결을 한번씩 출렁이게 만들고 지나갈때. 그 살랑이는 머릿결은 그야말로 감동의 파노라마요 놀라움의 삼십단 콤보이며 잘 익은 벼들이 만들어내는 황금빛의 출렁임을 바라보는 농부의 심정 못지않은 만족스러움의 오르가자미였었더랜다. (없다는 지금도 긴머리 여자보면 절반은 먹여주고 들어간다.)

그뿐인가. 두겹 쌍커플과 눈가에 두가닥 주름이 절묘한 밸런스로 사~알짝 접히며 만들어내는 그 눈웃음은 가히 잭 더리퍼가 휘두르던 칼날에 못지않게 살인적이었다. 오죽하면 별명도 눈웃음.

백옥같던 피부야 재껴놓기로 하자. 사실 중학교때는 전부다 애기피부므로, 그녀의 미모에 대한 지나친 주관적 해석이라는 오해를 살만하니까. 나도 그때는 피부 겁나게 좋았다.

하지만 그 몸매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수가 없으므로, 긴말하지 않고 그냥 전지현과 김혜수의 바람직한 부분만을 가져다 붙인 몸매였다고 말할랜다. 턱없이 덜 자란 내 눈깔에 그렇게 보였다는 말이다. 없다는 그 누나를 보면서 처음 성숙한 여인네의 몸을 알았으므로.
그런 누나가 갓 벗겨낸 바나나 속살같은 목소리로 마이크에 대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기계를 만지던 나는 테잎을 걸어놓는 것도 잊어먹고 그저 황홀함에 빠져 헤어나오지를 못했었다.


그러던 미혜누나는 상상속에서 온갖 모습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나의 청소년기의 분홍빛 상상 파트의 단골손님이었고 헤벌레한 넋나감과 인식하지 못한 타액분출의 일등공신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숫기라고는 2%도 없었던 거의없다는 막상 누나 앞에선 한마디 말도 꺼낼수가 없었다.
원래 첫사랑이라는 게 그런거 아닌가. 어떻게 손대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아름다운 것. 수학의 정석책의 마지막 장 마지막 문제만큼이나 손대기 힘든 존재. (가끔 그걸 정복하는 대단한 놈들도 있긴 하더라.)


그래서 결국 공삼옹의 지능지수에 필적하는 용기밖에는 없던 거의없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그녀를 다른 남자... 그 티라노가 씹다뱉은걸 킹콩이 받아 밟아버릴 그 녀석(중학교시절 유행하던 말놀이.. 람보가 옥상에서 던진걸 코만도가 밟고 어쩌구 하는)의 품의 안기는 것을 두 눈 씨퍼렇게 뜨고 보고야 말았으니.. 아아 잔인한 첫사랑의 기억이여.




그렇다. 그날, 그 시간, 그 자리에서, 없다는 가슴에 묻어둔 옛 첫사랑을 만나고야 말았던 것이다!!!!




아니 그런데 이거 뭐야.
그녀의 모습을 다시 위아래로 훑어본 거의없다, 일차 반가움과 놀라움에 이어 이차로 해머가 뒤통수를 가격하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의 자태가... 자태가...




그, 그 머리는 뭐지요? 그 파마.. 그거 우리 앞집 아주머니랑 같은 미용실에서 한겁니까?
한번 먹여 놓으면 육개월동안은 풀리지 않는다는 그 전설의 아교떡칠스탈 뽀글이파마..
아니 그 햇살같던 머릿결을 어떻게 튀겨버리면 그런 라면땅이 나오는 거에요.
그 트레이닝 복은 여기 이층에서 파는 거 맞죠. 위아래 합쳐서 만원도 안된다는 9900원짜리 아도니스 트레이닝 복.. 간지(이거 일본어 표현이다. 쓰지 말자.) 대박인데?
그..... 볼록한 아랫배의 돌출을 전혀 카바하지 않고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주는 과감한 패션은..누가 당신을 데려다가 묶어놓고 억지로 고열량 고칼로리 식단만 줄창 먹이던가요?


아, 정말 당신이 맞습니까. 내 첫사랑, 나의 여신, 내 꿈의 여인.

원체 길은 맨날 잃고 헤매지만 사람얼굴 하나는 기가막히게 알아보는 거의없다, 다시한번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그녀가 맞다는 확신을 했고, 역시 뭔가 알듯말듯하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그녀에게 스스로의 존재를 알렸다. 그녀는 나를 얼마나 기억할까.
안녕하세요.

그녀가 대답했다.

“어머, 어머? 어머머.”


아 그거, ‘나도 니가 누군지 알겠다. 기억나. 너 참 많이 변했구나? 오랜만에 이렇게 만나니 정말 반갑다.’의 줄임말이지요? 우리 어머니도 길에서 동창분을 만나시고 그 표현을 쓰시더라구요.


내 무릎 높이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아저씨 누구야?”

어? 넌 누구니. 꼬마야.... 어, 어, 헉?




“응. 엄마 친구야.”


“아, 아? 아....” .
(‘아니 그렇다면, 이 아이에게 스스로를 엄마라고 하신다면, 그렇다면 이 아이의 어머니가 당신이라는 말? 아아아 그렇구나...’ 의 줄임말..나도 이런 표현을 쓰게 되는군.)



어머니가 되셨군요.



그녀가 아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우리딸 이쁘지.”

천사 같네요. 당신 닮아서. 너무 예뻐요.



바보 같이. 그녀에게 뭘 바라고 있었던 거야. 그녀는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사랑받고 사랑하며 아름답게 ‘살아가고’있었던 거다. 내 기억에 사진처럼 박혀있는 모습과는 달리.
그저 얼마나 섹시해졌을까. 지금은 사귀는 사람 없나? 그럼 내가 어떻게 한번.. 이딴 생각이나 하고 앉았다가 변한 그녀의 모습을 보았으니 실망할 수 밖에.

누구는 새끼를 꼬아 만든 짚신같다고도 했고 또 누구는 풀을 엮어서 짜낸 돗자리 같다고도 했던 인연, 인연.
세상은 넓고도 좁고 인연은 전혀 새롭게 반복된다.
그건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어쩔수 없는 시선 때문일 게다.
하지만 사람 수만큼의 세상이라고 했고, 다른 이들의 삶도 역시 나처럼 움직이고 변하고 달라진다. 그들 중심으로.

소중하지 않은 인연이 어디에 있겠냐마는, 내 소중한 기억을 차지하고 있던 그녀를 다시 한번 만나고, 계속되는 그녀의 삶을 잠깐이나마 다시 한번 볼수 있어서, 기쁘고 반가웠다.
다음에 만날 땐,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해' 있기를.



피에스 : 역시 어려운 글은 시작하는게 아냐. 인생의 갓 반의 반을 살았을 뿐인 내가 '인연'에 대한 글을 써보겠다고 덤빈 자체가 무리한 시도였다. 미친놈.
2006/01/11 11:43 2006/01/1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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